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스샹달 전투 (문단 편집) == 파스샹달의 지옥도 == >"사방의 어두운 포탄 구덩이에서 부상자들의 신음과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고통에 못이겨 흐느끼는 가늘고 긴 신음소리와 절망감에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수십 명의 중상자들은 안전을 위해 새로이 난 포탄 구덩이 안으로 기어 들어가야만 했을 것이다. 무섭도록 자명했다. 그러나 이제 물이 차오르고 있었고, 움직일 힘이 없었던 그들은 서서히 익사했다.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잔혹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팔과 다리가 잘린 채 동료들이 자신을 발견할 것이라 믿으며 누워있는 (병사들의) 울음소리였다. 이들은 잉크처럼 새카만 어둠 속에서 죽은 자들 사이에 누워 외로이 끔찍한 죽음을 맞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더넘은 내 옆에서 조용히 훌쩍거렸고 모두 비참한 죽음에 측은한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후 다른 부대와 임무교대 후 복귀)이제 부상자들의 울부짖는 소리는 크게 줄었다. 길을 따라 비틀거리며 내려가다 보니, 그 이유는 명백했다. 포탄 구덩이 위로 물이 넘치고 있었던 것이다." -왕립 워릭셔연대 8대대 1중대 장교 에드윈 본(Edwin Campion Vaughn, 1897 ~ 1931)의 일기 중 1917년 8월 27일에서 28일 새벽까지의 상황을 적은 내용- [* 출처 존 키건의 "제1차 세계 대전" 참고로 이 일기를 적은 후 타 부대와 임무교대를 마치고 후방으로 가던 본은 독일군의 포격으로 토치카에 숨으려다 파편을 맞고 줄지어 늘어진 채 죽은 수 많은 영국군을 보고 그 사이를 지나던 중 무언가 자기 군장을 잡은 걸 알고 기겁한다. 알고 보니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이 살려고 손을 뻗어 잡은 게 그의 군장이었다고. 그 운 좋은 생존자를 끌어낸 후 이튿날 오전에 인원점검을 통해 자기 중대 인원 90명 중 생존자가 단 '''15명'''인 것을 확인하고 깜짝 놀란다.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함에 보고서를 쓰기 전에 위스키를 퍼마셨다고 한다. 그 후 17년 10월에 정식 중대장과 대위계급을 받을 때까지 활약하며 훈장도 받았다. 1928년 군에서 은퇴 후 1931년 의사의 [[코카인]] 남용 처방으로 병원에서 사망했으며 일기는 1981년에 출판되었고 파스샹달 전투의 참혹함을 가장 잘 전달한 기록으로 손꼽힌다.] >"황갈색 전투복의 다리와 줄지어선 머리 셋이 보였다. 신체의 다른 부분은 물에 잠겨 보이지가 않았다. 그 정면을 보고 있노라니 그들이 차오르는 물 위로 머리룰 내밀려고 젖먹던 힘까지 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다른 작은 구덩이에서는 라이플을 쥐고 있는 손이 보였다. 그 옆의 다른 구덩이에서는 철모와 반쯤 잠긴 머리가 보였다. 망자의 눈은 거의 같은 높이로 수면에 떠 있는 녹조류의 더껑이를 냉담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파스샹달 전투 생존자- 상술했듯 평범한 초원이던 파스샹달 지역은 3년 간의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수렁으로 변했다. 수렁 속에서 영국군과 독일군은 한치의 땅을 두고 치열하게 싸웠고 뻘밭이나 마찬가지인 전장에서 느릿느릿 전진하는 그들에게 총알이 빗발쳤다. 하지만 진흙은 방어측의 총구멍을 막아 격발불량을 일으켜 결국엔 처절한 사투가 벌어지곤 했다. 통상의 전장터에선 보통 들것 하나에 최대 네명의 병사들이 동원되었지만 파스샹달이나 마찬가지로 수렁화된 솜에서는 10명 정도의 인원이 필요했다. 병사들은 그 지역을 이동하기 위해 나무 판자로 길을 만들었고. 그곳으로 끊임없이 포탄이 날아들었다. 포탄을 피하기 위해 병사들은 길 옆의 진창으로 뛰어들었고 적지 않은 수가 빠진 진창에서 다시는 나오지 못했다. 또한 죽지 못한 부상자들이 끊임없이 신음과 비명을 질렀고, 구덩이 속으로 차오른 물들은 부상자, 때로는 운이 없는 몸이 성한 병사들까지도 익사시켰다. 그리고 살아남은 병사들은 그 신음소리를 들으며 상당히 괴로워했다. 파스샹달 전투의 상당수의 행방불명자들이 이렇게 포탄 구덩이 속에서 익사한 자들이 차지했다. 하지만 살아남은 병사들은 구덩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병사들을 봐도 외면, 아니 구조를 포기했다. 진창에 단단히 뿌리를 박은 병사를 구하는 것도 힘들거니와 자칫 잘못하면 자신도 따라 끌려가기 때문이었다. 3달이 넘게 이어진 연이은 포격과 공격으로 무인지대의 전장은 양측의 시체들을 갈아 엎고 또 그 위에 전사자와 부상자들이 쓰러져 죽어가는 '''인외마경'''으로 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